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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매각 중수기(政堂梅閣 重修記) : 진주강씨 박사공파 7세 휘 회백(淮伯)

  정당매는 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340번지의 옛날 단속사가 있던 자리에 있는데 그 옛날 우리 선조님이신 통정(通亭, 휘 淮伯) 선생께서 등과하기 전에 이 절에서 독서하다가 손수 심으신 것이다. 그런데 통정공께서 정당문학을 지내시고 벼슬에서 물러나셨기 때문에 이 고장에서 살던 사람들이 선생의 덕을 추모하는 마음에서 이 매화나무를 정당매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 후에 단속사가 폐사(廢寺)가 되고 그 일대가 촌락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후손들이 매화나무 주위에 단을 쌓고 비를 세운 바 있는데 그 비문에 상지십사년 정미(丁未) 후손 세주(世周), 택주(宅周)가 건립하였다고 새겨 놓았는데, 이 상지십사년 정미(上之十四年 丁未)가 언제인가 하고 역대표(歷代表)를 살펴보니 이 해는 헌종13년 정미년(1847)에 해당하고, 세주 택주는 분명 주자(周字) 항렬일 터이니, 주자 항렬은 통정공파 사평공(司評公, 휘 학손(鶴孫)6세손의 항렬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앞에 언급한 정미(丁未)는 지금으로부터 128년 전이라 계산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지난 을묘년(乙卯, 1915)에 족대부(族大父)이신 문안공(文案公 文會)께서 가까이 거주하는 일가들과 상의하고 다시 비를 세우고 비각(碑閣)을 지으면서 이 주위를 보호하는 담장을 둘렀는데 이 각을 정당매각(政堂梅閣)이라 하였다.

  그 후 세월이 오래되자 퇴락함을 면치 못하자 계사년(癸巳年, 1953)에 당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족숙(族叔) 강달수(達秀)씨가 전국의 일가들에게 약간의 금액을 모금하여 다시 보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안 되어 또다시 개와(기와)들이 깨어지고 서까래까지 썩어 비바람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영남에 사는 종인 중에 서울에 올라오는 일가마다 정당매각의 수리가 급하다고 말하였다. 나도 걱정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였지만, 몸도 쇠약하고 길도 멀어 감히 이를 맡겠다고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에 족형(族兄)이신 강찬희(燦熙, 합천거주)씨가 나를 찾아와서 정당매각의 수리가 급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비록 늙었지만 보수비용 마련하는 방책을 마련해 준다면 내가 현지에 내려가서 그 공사의 감독역을 맡아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강찬희씨는 바로 통정공의 직계손이시기도 하였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서 말씀드리기를 내가 비록 늙고 쇠약한 몸이지만 형님보다는 두 살이나 적고 또 형님께서 그런 각오를 가지고 계시니 이 동생이 감히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는 각 문중(門中)에 통지문을 보냈더니 각 문중에서 모두가 협조하겠다고 말씀을 주셨다. 그 중에서도 중희(重熙)씨와 계중(桂重)씨 등 두 종인이 특별성금을 내주셨는데 우선 내주신 약간의 금액을 가지고 금년 삼월경에 찬희씨와 함께 천리 길을 달려가서 정당매각을 살펴보았는데 그때 마침 매화가 만발하여 마치 웃으면서 맞아주는 듯하였다. 그래서 매화나무를 어루만지다 보니 차마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으니 그 감회가 어떠하였겠는가? 매각 주변을 살펴보니 동쪽은 거의 퇴락되었고 서쪽은 거의 무너지고 있었으니 과연 소문에 듣던바 그대로였다. 바로 수리공사를 시작하기로 결의하고 중앙종회 상무 용호(庸鎬) 종친과 함께 전국에 계신 종친들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

  찬희씨 혼자서 그곳에 남아 여러 가지로 고생하면서 감독을 하셨는데 이때 진주에 사는 종인 대박(大珀)씨와 운리(정당매각 소재지)에 사는 종인 낙중(洛中)씨 등 두 분이 좌우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한 달여 공사 끝에 완공되었는데 찬희씨는 노인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정성껏 추원지성(追遠之誠)을 다 보여주시니 진실로 존경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생각해보니 그 옛날에 통정선생께서 이 정당매를 보시고 시를 지으신 후, 이 매화를 찾아와서 이를 감상하고 통정선생의 운자(韻字)에 맞춰 시를 지어 남긴 것이 적지 않다.

  문안공 문회(文會)씨가 처음으로 정당매각을 지으시고 처음으로 통정선생의 시운(詩韻)에 맞추어 기념시(紀念詩)를 모집하여 놓은 바 있지만 아직까지 책으로 간행하지는 못하였는데 이번에 이 역사(役事)를 마치고 또다시 기념시를 널리 모집하여 전후 두 번에 걸쳐 응모한 시들을 한데 묶어 정당매시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어놓는 바이다.

  앞으로 자손된 사람들이 이 매각에 올라서 조선(祖先)들을 추모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옛날의 견씨(甄氏)의 사정(思亭)만이 모선지심(慕先之心)을 일으키는 정자(亭子)라고 혼자서 아름다운 이름을 독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원하기는 여러 종인들이 이 매각에 찾아와서 모선지심을 기르기를 바라고 바라는 바이다.

을묘년(乙卯, 1975) 모춘(暮春)에 후손 대곤(大崑) 삼가 기록한다

 

내용의 오해(誤解)와 한자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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