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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정공(通亭公) 휘 회백(淮伯, 진주강씨 박상공파 7세유사(遺事)

  통정공께서 벼슬하기 전에 지리산(두류산)에 있는 단속사에서 글을 읽으시다가 한 그루의 매화(梅花)를 손수 심은 일이 있었다. 그 후 벼슬에 나아가 정당문학(政堂文學)에 까지 오르시니 이 매화도 이름을 정당매라 부르게 되었다. 통정공이 훗날 정당매를 보시고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偶然還訪古山來(우연환방고산래)

우연히 옛 산을 다시 찾아오니

滿院清香一樹梅(만원청향일수매)

사원에 가득한 향기 한 구루 매화로구나

物性也能知舊意(물성야능지구의)

매화 비록 나무지만 나의 뜻 아는 듯이

慇懃更向雪中開(은근갱향설중개)

은근히 나를 향해 눈 속에 피었구나

一氣循環往復來(일기순환왕복래)

천기가 순환하여 갔던 계절 다시 오니

天心可見臘前梅(천심가견랍전매)

섣달에 핀 매화에서 천심 가히 보겠구나

自將鼎鼐調羹實(자장정내조갱실)

큰 솥에 푹 삶으면 좋은 국 맛 낼 열매가

謾向山中落又開(만향산중락우개)

헛되이 산중에서 떨어지고 또 피었네

 

  통정공의 손자이신 인재공(仁齋公, 강희안 : 통정공 넷째아들 석덕의 아들)이 청천양화소록(菁川養化小錄, 한국 최초 원예서)을 지었는데 그 책에다 쓰기를 우리 조부님 통정공께서 소년시절에 지리산(두류산) 단속사에서 독서하실 때 뜰 앞에 매화 한 그루를 심었는데 그곳을 찾아오셨다가 그 매화를 보시고 시 한 수를 지었다. 그 내용은 앞에 소개한 시와 동일하다. 다만 자장정내(自將鼎鼐)라고 된 구절을 직장전정(直將殿鼎)라고 고쳐 지은 것이 다른 것일 뿐이다.

  공은 대과에 급제하시고 관직이 정당문학에까지 오르셨는데 조정에 계실 때에는 좌우의 잘못을 바로잡으시고 서로 도와 조화를 이루도록 한 바가 많았는데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시()로써 미래사를 예언하는 분이라고 했다.

  또 단속사의 승려들도 공의 덕을 사모하였는데 청정하신 풍도와 고매한 품격을 잊지 못하여 그 매화나무를 보면서 공을 본 듯 생각하고 매년 그 매화나무에 흙을 북돋아 주고 잘 가꾸어서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가 전해지게 되어서 정당매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그 매화나무 가지가 휘어지고 구부러져 그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고 거기에다 나무껍질에 푸른 이끼가 둘러 있는 운치는 옛 화보에 나오는 매화와 다름이 없어 영남 제일의 매화가 될 것이다.

  그 이후로 사대부들이나 영남에 벼슬아치로 오는 사람들마다 이 고장에 오면 단속사를 찾아와 이 매화나무를 구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또 통정공이 지으신 시의 운자(韻字)를 따서 시를 짓고 처마 밑기둥에다 걸어 놓기도 하였다.

  한번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선생이 정당매시(政堂梅詩)에 후서(後序)를 썼는데 간단히 소개하면 내가 옛날에 영남에서 할 일이 없이 있을 때 두류산(지리산)을 구경하려고 가는 길에 단속사에 들렀더니 절 가운데 고루(古樓) 한 채가 있고 그 옆에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키는 한 길 남짓하였고 그 아래에는 오래된 등걸이 썩어 없어지지는 않고 반자(半尺) 쯤 남아 있었다. 이 절의 중이 이 매화나무를 가리켜 정당매라 한다기에 그 까닭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강 통정 선생께서 이 나무를 심었는데 그 후에 부처님의 복을 받아 벼슬에 나아가 정당문학에 이르니 그래서 이름을 정당매라 하였습니다. 그 후로 통정선생이 돌아가신지 백여 년이 지나고 나니 이 매화나무도 늙어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통정선생의 증손인 용휴(用休, 휘 귀손貴孫)씨가 그 아버님이신 진산군(晉山郡) 휘 희맹(希孟 : 文良公)의 명을 받아 통정공의 유적을 찾아왔다가 이 정당매의 등걸을 보고 마음에 감동을 느끼고 그 나무 옆에 새 뿌리를 심었는데 십여 년이 지나자 저렇게 한 길이나 잘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통정선생만이 자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매화나무도 자손이 있어서 저렇게 잘 자랐습니다.”라고 하였다.

  정랑공(正郎公)이 이 도(경상도)의 아사(亞使 : 都事, 각 도에 설치한 행정실무 담당)가 되어 진주를 지나다가 단속사를 찾아보고 근처에 사는 일가들과 함께 정당매 아래에서 술을 마시면서 말하기를 나의 선조 통계공의 형님이신 통정공께서 이곳에서 독서를 하시다가 여기에다 이 매화나무를 심으셨고 또 이곳에서 노닐면서 이를 감상하셨으니 우리 선조님이신 통계공께서도 분명히 형님과 같이 이를 보고 즐기셨을 것이니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통정공)께서는 부모님 밑에 형제가 세분이셨는데 모두가 문과에 급제하셨고 또 모두가 재상의 반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막내이신 회계(淮季)께서는 공양왕(고려 마지막 왕)의 사위가 되어 진원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공이 지은 자경시(自慶詩)에 쓰기를

 

具慶當前白日長(구경당전백일장)

부모님 살아계셔 즐거우니 하루해가 더 길었으면

一家三子桂花香(일가삼자계화향)

우리 삼형제 모두가 과거급제하였으니

鴻樞觀察俱清選(홍추관찰구청선)

추밀원이요 관찰이요 모두가 훌륭한 벼슬에 있고

季也分茅又晉陽(계야분모우진양)

막내아우는 봉작을 받아 진양군이 되었네

 

참고1 : 위의 내용 중 "통정선생의 증손인 용휴(用休, 휘 귀손貴孫)씨가 그 아버님이신 진산군(晉山郡) 휘 희맹(希孟 : 文良公)의 명을 받아"에서 귀손(貴孫)은 귀손(龜孫)의 오기인 듯하고, 또 "공께서는 부모님 밑에 형제가 세분이셨는데"에서 통정공의 형제분은 5형제(회백, 회중(통계공), 회순, 회숙, 회계)인데 오기인 것 같은데 위의 자경시에도 3형제라는 글귀가 있어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참고2 : 유사(遺事)는 족보에 기록되거나 족보와 연관된 별도의 문헌에 나오는조상이나 가문의 일화, 전설, 행적 등 구전이나 문헌에 전해지는 이야기나 기록이다.

 

 내용의 오해(誤解)와 한자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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