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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목공(恭穆公) 휘 시(蓍, 진주강씨 박사공파 6세)의 유운(遺韻)

久負江湖約(구부강호약) 옛날 강변에서 한 약속 잊어버리고

紅塵四十年(홍진사십년) 티끌 속에서 사십 년을 지냈더니

白鷗如欲笑(백구여욕소) 흰갈매기 웃고 싶은 듯

來近釣磯邊(내근조기변) 낚시하는 강변으로 오고 있네

 

 공목공(恭穆公) 휘 시(蓍, 진주강씨 박사공파 6세)의 유적(遺蹟)

  우리 선조님들이 살던 옛터는 진주의 비봉산(飛鳳山) 아래 봉곡촌(鳳谷村 : 진주의 관아 뒤에 있다)이다. 공목공 대()에 이르러, 공이 영의정(領議政)인 원정공(元正公) 하즙(河楫)의 사위가 된 뒤 진주 서쪽에 있는 단속사(斷俗寺) 아래 사월촌(沙月村)으로 이사한 뒤 통정공(通亭公) 오형제를 낳으셨다.

  만년(晩年)에 통정공 형제들이 사월촌에서 각각 전국 각처로 이사하고 통정공(회백)께서 진주 동쪽에 있는 월아산(月牙山) 아래 목계(木溪) 위로 이사하여 사시었다.

  창녕공(昌寧公, 우덕)이 그 자리에서 이어서 살았고, 그의 아들 문경공(文景公, 휘 맹경(孟卿 ) 형제와 목계(木溪)의 자(휘 휘(揮)가 모두 그 터전에서 출생하였다. 지금에는 이곳을 하정승(河政丞) 강정승(姜政丞)의 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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