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 예관(禮官)을 보내어 좌의정(左議政)에서 물러나 벼슬을 그만둔 강서(姜筮)를 제사(祭祀)하도록 하였다. 그 제문에 이르기를 『왕은 말한다. 몸을 바쳐 나라의 신하가 된 후로는 마음이 시종(始終) 같았었다. 은혜를 베풀어 덕을 포상(褒賞)하니 그 예(禮)는 죽었을 때나 살아 있을 때나 차이가 없도다. 생각하건대 경(卿 : 姜筮)은 성품이 진실하고 순수하였고 행실 또한 바르고 밝았으며, 온순하고 공손하면서도 청렴하였고, 조용하게 지내면서 사치하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때는 부지런하고 검소하여 세상에 알려졌고, 공사(公事)에 임하여 충성스러운 것이 더욱 빛났다. 일찍이 성조(聖祖)께서 그 재주를 알아주어서 부지런히 충성을 다하였다. 또 태종(太宗)임금의 사랑을 받아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다. 한성판윤(漢城判尹, 서울시장)이 되어 세상에서 그 밝고 진실됨을 칭찬받았고, 다시 장수가 되어 합포(合浦, 마산합포구)로 나아가서는 병사들이 공의 위엄과 은혜에 감복한 바도 있다. 그래서 여러 차례 숭반(崇班, 높은 벼슬)에 올라 여러 조정에서 훈구(勳舊, 공신 집단)가 되었다.
하늘은 어찌하여 이 사람을 돌보지 않아 나를 이렇게 슬프게 하는가? 이에 예관(禮官)에게 명하여 변변하지 못한 전(奠, 임시 제사)을 드리도록 하노라. 아! 슬프다. 기영(耆英: 나이 많고 훌륭한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나니 구덕(舊德)을 잊기 어렵구나! 증직을 내리고 이와 같이 위로하니 진실한 영혼은 어둡지 않으리라.』
◇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의정 양희(良僖) 휘 서(筮)는 공목공(恭穆公)의 8년 터울의 아우로 고려말 공양왕 3년(1391년) 때 경상도병마도절제사(慶尙道兵馬都節制使, 육군 지휘 총괄로 도절제사급 무관 관직)로 임용되었으나 1392년 고려가 멸망하자 두문자정(杜門自靖)하고 출임(出任)하지 않았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