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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목공 유사(恭穆公 遺事) 동국통감(東國通鑑) : 진주강씨 박사공파 6세 휘 시(蓍)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즉위(卽位)하던 날 저녁에 왕의 사위인 통계공 강회계(姜淮季)의 아버지 진산군(山郡) 휘 시()가 대전(大殿) 안으로 들어와 왕에게 말하기를 여러 장수들과 정승들이 전하(殿下)를 왕으로 세운 것은 자기들의 화()를 면하고자 해서 꾀한 것이지 왕씨(王氏)들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니 전하께서는 이를 신중하게 생각하시어 믿지 마시고 스스로 몸을 보전(保全)할 것을 생각하소서.”라고 했다.

  그때 또 다른 왕의 사위인 우성범(禹成範)이 왕의 곁에서 이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 때 9명의 공신(功臣)들 무리가 왕에게 말하기를 전하께서 이제 겨우 왕위에 오르셨는데 참소(讒疏, 윗사람에게 거짓 고변하는 행위)하는 말이 들어오니 신() 등은 황공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 이 참소하는 말을 믿으신다면 신 등에게 죄를 주시고 만약 신 등이 거짓 성(爲姓 : ()씨를 말함)을 물리치고 다시 왕씨로서 임금을 세운 것에 대한 공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참소한 사람에게 죄를 주옵소서.”하니 왕이 좌우를 돌아보고 아무 말이 없었다.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1629~1711, 숙종 때 함경도관찰사, 형조판서, 영의정)이 말하기를 (: 공목공을 말함)은 조선이 혁명한 후 벼슬을 하지 않다가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라고 했다.

 

내용의 오해(誤解)와 한자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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