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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목공(恭睦公) 휘 시(蓍, 1339 ~ 1400, 진주강씨 박사공파 5세) 묘지명(墓誌銘)

  건문(建文) 경진년(庚辰年, 1400) 겨울에 진양 강공 휘 회백(淮伯)이 그의 아버지 공목공(恭穆公)의 행력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묘비문(墓碑文)을 지어주도록 청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아버님은 몸가짐이 항상 부지런하고 또 신중하게 직에 임하셔서 그 이름에 따른 실적이 크게 나타나신 분으로 가히 후세에 전할만한 어른입니다. 비석에 공적을 새겨야 할 터인데 이를 하지 못한다면 내가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놓고 엎드려 이마를 조아리고 울면서 청하였다. 나는 공과 본시 인척간이고 공의 부자와 알고 지낸 지가 오래인지라 의리상 사양하지 못하였다.

  삼가 살펴보니 공의 휘는 시()이고 진양에서 이름난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대조(五代祖)는 국자박사를 지낸 휘 계용(啓庸)이시고 그 아들은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를 지내신 휘 인문(引文)이신데 모두가 유학에도 이름난 분들이셨다.

  처음에는 박사공(啓庸)이 일본통신사의 서장관으로 나갈 때 급사공(引文)도 함께 따라갔었다. 그 후에는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러 갈 때 급사공이 일본의 지리를 잘 안다고 하여 다시 서장관이 되어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일본으로 들어갈 때 풍랑이 험하고 또 전쟁(원나라가 일본 침공)하는 속을 왕래하였기 때문에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왔는데 돌아온 후로는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자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글을 하지 않는 선비였더라면 이렇게 험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들은 다시는 유업(儒業)을 하지 마라.”라고 했다.

  그래서 급사공 휘 인문(引文)의 아드님이신 감찰어사(監察御史) 휘 사첨(師瞻)과 손자이신 판도정랑(版圖正郎) 휘 창귀(昌貴) 두 분은 과거를 보지 않고 벼슬을 하였는데 어사공(師瞻)은 공의 증조부이시다. 정랑공(昌貴)은 후에 문하시중에 증직되시고 진원부원군에 추봉되셨는데 공에게는 할아버지가 되신다. 봉산군에 봉해지시고 시호가 문경공이신 휘 군보(君寶)는 공의 아버님이시다.

  문경공(君寶)은 성품이 영민하고 학문을 좋아하였는데 진원군(昌貴)께서 아들에게 선세(先世)에서 하시던 유업을 다시 하도록 허락하자 과거에 합격하였다. 결국 유업을 다시 시작하였고 지위가 재보(宰輔, 재상)에 이르게 되어서 가문을 다시 일으키게 되었다. ! 급사공의 훈계는 한때 곤란을 겪으면서 특별히 혼줄이 난 것 때문이었지만 일본으로 쳐들어가던 원나라 군사들이 바다에서 죽어 물고기의 뱃 속에다가 장사를 지내고 돌아오지 못한 것이 어찌 유업을 한 탓이라 할 것인가?

  진원부원군(昌貴)께서 아드님을 잘 인도하여 학문에 열중하도록 하였고 아드님 문경공은 높은 벼슬에 올라 집안을 다시 흥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다 하늘의 계시라 할 것이요 그동안 영체(零替)되었던 한을 풀고 경사스런 일이 많아 창성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문경공이 계림(경주)김씨 전객령 여진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지정(至正) 기묘년(己卯年, 1339) 1222일에 공을 낳았다. 지정 병술년(丙戌年, 1346)에 공이 여덟 살 되던 해에 문음(집안의 연줄)으로 연릉직(延陵直, 외국 사신 숙소 관리)이 되고 19세 되던 해인 정유년(丁酉年, 1357)에 성균시에 합격하여 임인년(壬寅年, 1362)에 대관서(大官署)의 승()에 임명되고 이어 낭장(정6, 무관으로 하급 장교)으로 임명된 후 겸하여 감찰사의 규정(糾正)이 되고 그 해에 다시 전공사의 시랑(侍郎)이 되고 이어서 광흥창(廣興倉)의 사(使)가 되었는데 업무를 명쾌하게 처리하여 평판이 아주 좋았다.

  이어서 합문(閤門) 인진부사(引進副使, 조정의 조회 의례 담당)가 되었는데 예절 바른 모습으로 법도에 맞게 처세하니 조열대부(朝列大夫, 4)에 가자(加資, 승진)가 되어 지합천사(知陜川事)로 지방으로 나아갔는데 고을을 다스리는 실적이 우수했다.

  얼마 후 조정으로 들어와 전법사(典法司, 법률 등 담당), 판도사(版圖司, 호구 세금 식량 담당), 전리사(典理司, 인사 과거 등 행정 담당) 등의 총랑(4품 문관)으로 근무했으며 중현대부(中顯大夫, 3)로 승차하여 위위시윤(衛尉寺尹, 의장(儀仗)예기 병기 담당)이 되고 삼사(三司, 국가의 전곡 출납회계 등 재정담당)의 좌윤(3)을 거쳐 봉순대부(3품 문관)로 승차하여 군기시(軍器寺, 병기 담당) 판사(3)가 되었다가 강릉도(江陵道) 안렴사(按廉使, 지방행정의 감찰과 관리 업무를 맡은 중앙의 파견 관리)로서 지방에 나아갔었는데 이 해가 홍무(洪武) 무오년(戊午年, 1378) 초겨울이었다. 그 이듬해인 기미년(己未年, 1379) 다시 통헌대부(通憲大夫 2품 문관)로 승차하여 선공시(繕工寺, 국가의 토목과 영선 담당) 판사(3)가 되었다. 갑자기 봉익대부(2, 재상반열)의 가자(加資, 승진)되었는데 그 이듬해에 안동대도호부사(安東大都護府使, 지방 행정과 군사적 요충지의 책임자)로서 지방에 내려가 있을 때 아버님이신 문경공이 돌아가셨다. 겨우 상기(喪期)를 마치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고려 최고의 정무기관)의 좌상시(左常侍, 왕의 정책 등에 간언 담당)로 임명되고 얼마 후인 임술년(壬戌年, 1382)에는 판도사((版圖司, 호구 공부 전량 등 국가 재정 관련 사무 총괄) 판서가 되고 또 밀직사(密直使, 왕명 출납, 궁중 숙위, 군사 기밀 등 국가 핵심 업무 담당)의 부사(府使)가 되었다. 갑자기 단성보리공신(端誠補理功臣)의 칭호를 받고 그 해 겨울에 광정대부(匡靖大夫)로 진급하여 판후덕부사(判厚德府司, 왕의 부모 제사 등 담당)가 되고 겸하여 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 의약품 총괄 부서 책임자)와 상호군(上護軍, 26위의 으뜸 벼슬)을 겸하였다.

  계해년(癸亥年, 1383) 봄에 문하부(門下府)의 문하평리(門下評理, 문하부의 정책 결정 핵심 재상, 2) 상의(商議)가 되고 그 해 겨울에는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지고 품계가 중대광(重大匡, 문관의 최고 위계 종1)에 오르고 경오년(庚午年, 1390) 여름에는 광정대부(匡靖大夫, 2품 문관) 판자혜부사(判慈惠府事, 왕의 어머니를 모시는 업무)와 상호군이 되고 동판(同判, 판사 바로 아래 직책)을 거쳐 도평의사사사(都評議使司事, 국가의 최고 정무기관의 재상)가 되었다. 그 해 겨울에는 추충보조공신(推忠補祚功臣)에 가수(加授, 관직이나 품계를 더해 줌)되고 이어서 대광상의(大匡商議, 국가의 최고 정무기관) 문하부의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2품의 최고 관직)와 동판도평의사사사(同判都評議使司事, 도평의사사 내 판사 아래 관직)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 궁궐 관청 등을 관리하는 선공시의 총괄 정3), 좌우위상호군(좌우위 소속 장군으로 수도 방위와 국왕 호위 정3)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도 대부인(어머니)은 건강에 이상이 없었고 공의 형제들과 자제들이 계속해서 조정에 들어가 재상(宰相)이 되니 일세(一世)에 혁혁하게 빛나서 강씨들이 크게 떨치게 되었다.

  임신년((壬申年, 1392)에 공이 54세 되던 해인데 대부인께서 돌아가셨다. 공이 여묘 삼 년을 살았는데 사람마다 효성이 갸륵하다고 칭찬하였다. 건문(建文) 경진년(庚辰年, 14001126) 병으로 집에서 돌아가시니 향년 62세였다. 임금(정종 이방원)께서 부음을 들으시고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장례를 치러주도록 하고 공목(恭穆)이란 시호를 내렸다. 그 이듬해 3월에 임강현(臨江縣), 현재 연천군 왕징면 일대) 동쪽에 예장(禮葬)하였다.

  공은 천성이 조심스럽고 삼가는 분이었지만 풍채는 엄격하게 보였다. 그러나 말을 하거나 일을 처리할 때도 예()에 맞게 하려고 힘썼으며 부모님을 효도로써 봉양하고 집안을 다스림에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하였다. 조정에 있을 때나 지방관으로 나갔을 때에는 법을 잘 지키고 누구에게 아부하여 일을 처리하지 않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꺼리는 일이 많았다.

  부인 하씨는 중대광을 지내시고 진천군에 봉해지셨으며 시호가 원정공(元正公)이신 휘 즙()의 따님이시다. 아들 다섯을 낳았다.   큰아들은 회백(淮伯, 통정공)은 병진년(丙辰年, 1376)에 과거에서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벼슬에 나아가 대간(大諫)을 거쳐 판밀직(判密直, 왕명 출납의 출납 등 고위직)으로 있다가 교주도(交州道, 강원 영서지역)와 강릉도(江陵道)의 관찰(觀察)로 나아갔다. 승진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大司憲)이 되었는데 임금에게 말씀드린 것이 잘못되어 파직(罷職)이 되었다. 기묘년(己卯年, 1399) 겨울에 다시 기용되어 정헌대부(正憲大夫) 계림부윤(鷄林府尹)으로 나아갔다. 경진년(庚辰年, 1400)에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 함경도 지역에 치안 군사 민심 관리 파견 고위직)가 되었다. 둘째아들 회중(淮㑖, 통계공)은 과거에서 진사로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가선대부(嘉善大夫) 홍주목사(洪州牧使, 충청도 지방 통치 정3)가 되었고 셋째아들 회순(淮順)은 사재소감(司宰少監, 궁중에 식료품 담당)이 되었다. 넷째 회숙(淮淑)은 제위(諸衛)의 장군(將軍)이 되었고 다섯째 회계(淮季)는 기사년(己巳年, 1389)에 과거에서 진사로 급제하고 중대광을 지내고 진원군에 봉해졌는데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손자와 증손자들이 약간명이 있다.

  큰아들 정당(政堂, 淮伯)이 두 번 장가를 들었다. 첫부인은 정씨(鄭氏)이고 32녀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떴다. 큰아들 종덕(宗德)은 사헌부 감찰(監察)이고 둘째 우덕(友德)은 감문위산원(監門衛散員, 궁성 내외 수문직)이며 셋째 진덕(進德)이다. 계실(繼室) 이씨(李氏)는 아들 둘을 낳았는데 소감(少監) 휘 회순(淮順)과 장군(將軍) 휘 회숙(淮叔)이다.

중략~

 명()을 붙인다.

 

惟彼晉陽有姓日姜(유피진양유성일강)

저기 저 진양 땅엔 강씨들이 많고

世有儒賢王庭以揚(세유유현왕정이양)

대대로 유현이 많아 조정을 빛내었네

烈烈博士海國是使(렬렬박사해국시사)

장하신 박사공은 일본에 사신으로 가셨는데

其從以行酒有孝子(기종이주유효자)

사신으로 가실 때 효자 아들 같이 갔네

孝子繼征風濤與兵(효자계정풍도여병)

효자 아들 사신으로 갈 때는 파도 심하고 전쟁 중이어서

旣危旣險瀕死而生(기위기험빈사이생)

위험하고 험난한 곳에서 죽다가 살아왔네

戒子若孫無儒爾門(계자야손무유이문)

아들과 손자들에게 유학을 하지마라 가르치면서

吾非以儒豈慄吾魂(오비이유기률오혼)

내가 유학을 안 했으면 혼백까지 놀랬겠냐 말씀했네

子孫承訓由吏而進(자손승훈유이진)

자손들이 잘 따라서 과거 보지 않고 벼슬했지만

三世復始其家克振(삼세시기가극진)

삼대만에 유학을 시작하니 집안이 흥성했네

顯允文敬積善之慶(현윤문경적선지경)

덕이 많은 문경공이 적선하신 음덕들을

公相承承門閥之盛(공상승승문벌지성)

공이 잘 이어 문중이 창성했네

偉矣恭穆威儀抑抑(위의공목위의억억)

위대하신 공목공은 위의도 당당하고

率履不回邦之司直(솔리불회방지사직)

공정무사 하시오니 나라의 모범이었네

有嗣其賢欲傳可傳(유사기현욕전가전)

그 어지심 이어받아 전할 것을 전했으니

謁文太史于墓是鐫(알문태사우묘시전)

태사의 글을 받아 묘비에 새기려네

我辭非被可以示後(아사비피가이시후)

나의 글은 아부함이 없어 후세에 보일만 하니

彌千百年永昭不朽(미천백년영소불후)

천백 년 오래도록 영원히 밝혀주려 하네

서기 1400년 대제학(大提學)   양촌(陽村) 권근(權近) 글을 짓다

 

참고

3(3) : 전곡의 출납 및 회계를 관장하는 재정기관의 고위직 

감문위산원(監門衛散員) : 궁성의 경비를 담당

감찰사 규정(糾正) : 감찰사(사헌부) 소속 관직 

감찰어사(監察御史) : 관료사회의 투명성과 왕권 강화를 위한 핵심 감찰기관인 어사대 소속

광정대부(匡靖大夫) : 첨의참리, 판공조사 등 고위 문관직에 부여된 품계(2)

광흥창(廣興倉) (使) : 관리들의 녹봉 등 국가 재정 관청의 책임자(4)

교주도(交州道) : 강원도 영서지방 춘천 등의 행정구역으로 경상도 전라도 서해도 양광도 등 5도에 해당한다.

국자박사(國子博士) : 교육기관인 국자감에서 유학을 가르치는 교수 

군기시(軍器寺) : 활 화살 화약 무기 등 군사 장비 등을 제조하는 병조 소속 기관

낭장(郎將) : 중앙군 조직으로 200여 명의 군사 지휘관 

대관서(大官署) () : 제사와 연회 때 음식 조달 담당 부서의 소속 

도평의사사사(都評議使司事) : 도병마사 후신으로 군사 등 국가 주요 정책을 논의하는 최고기관의 책임자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 : 북방 국경 지역인 동북면의 군사 행정의 총괄 책임자

동판(同版) : 동판밀직사사, 동판도평의사사사 등 판사를 보좌하는 바로 아래 관직

문하성(門下省) : 왕의 자문과 정책 논의, 신하들의 의견 수렴 등 담당 최고 기관

문하시중(門下侍中) : 조선의 영의정, 현재 국무총리(1)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 왕을 보좌하고 국정운영의 실무를 총괄하는 도첨의부 소속 최고의 정무 재상직(1품 또는 종1)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 중앙 최고 행정기관으로 언론 및 간언의 기능도 겸하는 문하부의 정승직(2)

문하평리(門下評理) : 문하부 소속 핵심 관직(2)

밀직사(密直使) : 왕명출납 궁궐경호 기밀과 안전을 담당하는 최고위급 관진(1~2)

사재소감(司宰小監) : 고려와 조선 시대에 수산물, 진상품, 땔감 등을 관리하던 관청 소속(4)

삼중대광(三重大匡) ; 대광(大將軍)에 오른 최고위 군사, 공신에게 주는 칭호(작위)

상서성(尙書省) : 실무행정(6: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을 맡아 각 부서의 업무 조정 등 담당 최고 기관

상의(商議) : 찬성사상의(贊成事商議) 등의 형태로 재추(宰樞, 재상급 고위 관료집단)의 관직 뒤에 붙여 그 관직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도록 되어 있으며 재추로서 도당(都堂: 都評議使司)에 합좌하여 국정 논의

상호군(上護軍) : 현대의 사단장급 장군(3)

서장관(書狀官) : 외교사절단(통신사) 3인자(삼사신)로 기록과 감찰 담당

안렴사(按廉使) : 단기간 지방에 판견되어 행정 군사 민생 재판 조세 등 지방관의 업무를 감찰하던 지방 관직

예문관 대제학(大提學) : 문학과 문한(文翰) 왕의 명령, 국가의 문서 작성 관리 기록 등)을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인 예문관의 최고위직

위위시윤(衛尉寺尹) : 궁중의 주요 행사 시 사용 물품(의장 군사장비 등) 관리하는 위위시의 고위직 

인진부사(引進副使) : 조정의 조회와 의례를 맡았던 관청 소속 관직 

전객령(典客令) : 궁전 및 왕실 관련 업무, 외교와 사신 접대 등을 총괄하는 고위직

전공사(典工司) 시랑(侍郞) : 토목 건축공사 등 영선에 관한 업무 관서인 전공사 소속 실무 담당 

전리사(典理司) : 중앙관부. 문관의 선임 공훈 예의 제향 조회 학교 과거시험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

전법사(典法司) : 법률 소송 재판 등 형사 사법업무 담당 관청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 : 왕실 업무(족보 관리 등) 담당 

정당문학(政堂文學) : 중서문하성(왕과 국정 결정) 소속의 상징적 관직(2)

제위(諸衛) ; 중앙군조직인 26위에서 6위에 해당하며 왕의 수레를 호위하는 등의 업무

좌찬성(左贊成) : 우찬성 좌참찬 우참찬 등과 함께 3의정(중서성, 문하성, 상서성)을 보좌하는 고위직(1)

중서성(中書省) : 국가정책 결정 및 관리 임명 등 실질적인 국가 최고 행정기관

지문하시중(知門下侍中) : 중서문하성 소속의 재상급 고위직(2)

지합천사(知陜川事) : ()는 고려시대 특정 행정구역의 행정을 맡는 지방관에게 붙이는 명칭으로 합천 수령을 뜻한다.

직제학(直提學) : 예문관 보문관 등 주요 교육기관에서 학문적 업무, 관청의 문서 검토 등을 담담하는 핵심 관직(3품 종3품 등 다양한 품계)

첨의참리(僉議參理) : 국가 최고 행정기관인 첨의부 소속(2)

첨의평리(僉議平理, 첨의평의사사) : 중앙 최고 정책 심의 의결 기관

총랑(摠郞) : 전법사 전리사 군부사 판도사 소속의 관직(4)

통신사(通信使) : 일본 등 외국으로 파견된 사절단

판공조사(判工曹事) : 국가의 건설 건축 등 공업업무 총괄하는 판서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 조선시대 왕의 외척이나 종친을 관리하기 위한 관청의 책임자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 ; 궁궐 등 국가 주요 시설의 건축 및 보수 담당인 선공시의 책임자(3)

판자혜부사(判慈惠府事) : 주로 대비(왕의 어머니)를 모시는 업무를 담당하는 자혜부의 책임자(2)

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 : 의약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의관 조직의 최고 책임자(3)

판후덕판사(判厚德府事) : 고려 말 공양왕이 자신의 친생부모를 추존하기 위해 설치하였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는 친부인 환조의 사당을 관리하고 제사를 맡던 기관의 책임자(2)

홍무(洪武) :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연호다. 명나라와 조공, 책봉 관계를 맺고 안정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홍무 연호를 사용함.

홍주목사(洪州牧使) : 충청도 서북부(홍성 등)지역의 행정 군사 등을 관할하는 외관직(3)

재보(宰輔) : 왕을 보좌하는 재상(2품 이상)

판도정랑(版圖正郎) : 고려 후기 호구(戶口) 세금 식량 화폐 등을 담당하는 중앙 관청인 판도사 소속 관직

 

내용의 오해(誤解)와 한자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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