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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 봉산군(鳳山君) () 문경(文敬, 君寶, 1312 ~ 1380, 진주강씨 박사공파 5세) 강선생 지 묘비명

  이곳 성주(星州) 땅에 있는 의봉산 남쪽 제석봉 아래 북향으로 모셔져 있는 산소가 있는데, 이 어른이 곧 나의 20대조이신 문경공(文敬公)부군 휘 군보(君寶)의 체백(體魄)이 묻혀있는 곳이다.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증직되시고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에 추봉(追封)되신 휘 창귀(昌貴)의 아드님이시고, 감찰어사(監察御史)를 지내신 휘 사첨의 손자이며, 전중내급사(殿中內描給事)를 지내신 휘 인문(引文)의 증손자이시고, 국자박사를 지내시고 진산부원군에 봉해지신 휘 계용(啓庸)의 현손(玄孫, 고손자)이다.

  우리 진산강씨(晉山姜氏)는 고구려에서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를 지내신 휘 이식(以式)으로부터 시작하여 왔으나 세대가 까마득히 멀어서 문헌으로는 고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처음으로 박사공(博士公)으로 대수(代數)를 밝힐 수 있는 중시조(中始祖)로 받들게 되었다. 중략~

  공께서는 어릴 때부터 모습이 준수하고 성품이 민첩하며 글을 좋아하고 재기에 뛰어나 아버지이신 진원군 휘 창귀께서 심히 사랑하여 앞으로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을 기대하여 유술(儒術, 유교의 실천적 방법)을 공부하게 하도록 하였으며 충숙왕 병자년(丙子年, 1336)에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그 뒤로 정당문학(政堂文學, 국정의 최고 실무담당 관직), 첨의평리(僉議平理),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거쳐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을 지내시고, 봉산군(임금이 공로를 인정하여 내리는 명예직)으로 봉해진 다음 벼슬을 그만두고 쉬고 계시다가 홍무(고려가 공식적으로 명나라 연호를 사용함) 경신년(庚申年, 1380)에 돌아가시니 이문제인(以文濟人, 문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지신이경(持身以敬, 공경하므로 몸가짐의 근본으로 삼다)으로 시호를 내리니 즉 문경(文敬)이다.

  문경공은 다섯 임금을 섬기면서 몸가짐을 근신하였고, 만사를 인(, 어질다)으로 대하였으며, 정사를 행함에 있어 매우 숙련되어서 충성을 다하고 공사를 위하여 전력을 다하였다. 모든 것을 공정하게 처리하시니 그 풍채가 위엄이 있어 당당하였고, 부모님을 효도로써 봉양하였는데, 혹시 부모님의 뜻에 어긋날까 항상 걱정하여 몸과 마음을 모두 편안하게 모시려고 노력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거상(居喪, 상중에 있음)할 나이(70)가 이미 지났음에도 슬픔을 다하면서도 몸이 상하지 않도록 하니 그때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양촌(陽村) 권근(權近) 두 선생이 만시(挽詩)를 지어 칭찬하였으니 이를 보면 공께서 충성과 효도를 모두 다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역사에는 기록이 없지만 조정에 나가서 세운 훌륭한 공훈과 정사에 대한 건의가 있었을 터인데 고증할 문헌이 없어 한스러울 뿐이다.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 시()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문하부 정2, 의정부)를 지내고 시호는 공목(恭穆)이며 호는 양진당(養眞堂)이다. 둘째 아들 서()는 좌정승(左政丞, 도첨의부의 최고위 재상)을 지내고 시호는 양희(良僖)이다.

  손자 회백(淮伯)은 성균관제주(成均館祭酒)와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 예문관에서 최고 학문을 담당하는 정2)을 지냈고 호는 통정(通亭)이시고 회중(淮仲, 通谿公派), 회순(淮順), 회숙(淮淑), 회계(淮季) 5형제가 있다. 증손자는 종덕(宗德), 우덕(友德), 진덕(進德), 석덕(碩德) 4형제를 두셨는데 진덕(進德, 承旨公)은 우승지(右承旨)를 지냈다. 현손자(고손) 중 희안(希顔)은 직제학(直提學),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냈으며 호는 인재(仁齋)이고 시와 글 그리고 그림에 능했으며, 희맹(希孟)은 좌찬성(左贊成)을 지냈고 문장과 그림에 능하였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증직되었다. 중략~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선생은 대대로 벼슬한 집안에서 태어나 벼슬도 높았고, 나라로부터 땅도 하사받았고, 작위(爵位)도 하사받아서 나라의 명신이 되었고 청렴하고 신중한 덕과 충성과 효도가 뛰어나 그 시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서 후세까지 빛나고 있지만, 그에 비한 공업은 보답받지 못했으니, 이것이 어찌 평소에 적덕(積德, 덕을 베풀어 쌓음)하여 자기는 보답을 받지 못하고 후손들에게 그 보답이 돌아간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래서 자손들이 대대로 크게 번창하여 도덕과 문장이 훌륭한 사람, 충성과 효도로 이름난 사람, 벼슬이 높은 사람, 유학으로 이름난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와 찬란하게 문중을 빛냈고 자손들도 번창하여 이 나라에서 대족(大族)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하늘과 땅이 있는 한 길이 이어질 것이니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이것은 부군께서 쌓아서 내려준 음덕임이 분명하다.

  묘소 앞에는 예전에 표석이 있었는데 이 표석은 신계(新溪) 휘 사택(思宅), 추헌(楸軒) 휘 민회(玟會), 몽은(夢隱) 휘 지형(智灐) 등 세분이 세웠었는데 경인년(庚寅年, 1950)의 전쟁 때 없어지고 이번에 후손 성덕(成德)이 돌을 다듬어 옛 비석을 바꿔 세우려 하면서 문중 여러분들이 상의하고 대룡(大龍, 글쓴이)에게 명하여 이를 기록하여라 하였다.

을사년(乙巳年, 1965년) 여름 강대룡(大龍) 짓다

 

참고

삼중대광(三重大匡) ; 대광(大將軍)에 오른 최고위 군사, 공신에게 주는 칭호(작위)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 왕을 보좌하고 국정운영의 실무를 총괄하는 도첨의부 소속 최고의 정무 재상직(1품 또는 종1)

문하시중(門下侍中) : 왕을 보좌하며 백관들을 통솔하고 국가 대사를 논의하는 중서문하성의 최고위 관직(종1품), 조선의 영의정, 현재 국무총리

감찰어사(監察御史) : 관료사회의 투명성과 왕권 강화를 위한 핵심 감찰기관인 어사대 소속

전중 내급사(殿中內給事) : 왕실 업무(족보 관리 등) 담당

국자박사(國子博士) : 교육기관인 국자감에서 유학을 가르치는 교수

정당문학(政堂文學) : 중서문하성(왕과 국정 결정) 소속의 상징적 관직(2)

첨의평리(僉議平理, 첨의평의사사) : 중앙 최고 정책 심의 의결 기관

예문관 대제학(大提學) : 문학과 문한(文翰, 왕의 명령, 국가의 문서 작성 관리 기록 등)을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인 예문관의 최고위직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 중앙 최고 행정기관으로 언론 및 간언의 기능도 겸하는 문하부의 정승직(2)

직제학(直提學) : 예문관 보문관 등 주요 교육기관에서 학문적 업무, 관청의 문서 검토 등을 담담하는 핵심 관직(3품 종3품 등 다양한 품계)

좌찬성(左贊成) : 우찬성 좌참찬 우참찬 등과 함께 3의정(중서성, 문하성, 상서성)을 보좌하는 고위직(1)

중서성(中書省) : 국가정책 결정 및 관리 임명 등 실질적인 국가 최고 행정기관

문하성(門下省) : 왕의 자문과 정책 논의, 신하들의 의견 수렴 등 담당 최고 기관

상서성(尙書省) : 실무행정(6: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을 맡아 각 부서의 업무 조정 등 담당 최고 기관

 

내용의 오해(誤解)와 한자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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