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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봉산사(鳳山祠) 연혁(沿革)

  고구려 병마도원수이자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시조이신 강이식(姜以式)장군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885번지 대봉산 자락에 위치한다. 강이식 장군은 598년(고구려 영양왕) 임유관 전투서 수군을 격파하였고, 612(영양왕)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군 30여만 명을 크게 무찔러 고구려의 국방을 수호한 명장으로, 진주강씨의 시조이시다. 이후 신라 헌강왕 때에 판내의령(判內議令) 강진(姜縉)이 진양후에 봉해지면서 강씨 가문이 진주를 세거지로 삼았다.

  봉산사는 고려 광종 시기(10세기 중엽)부터 사당이 있었다는 구전이 있으며, 1570(선조 3년) 진주 봉곡촌에 다시 사당을 세워 봉산사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1714(숙종) 대봉산(현 비봉산) 기슭에 중건되었다. 이후 1802(순조)에 화재로 전소되었고, 1911(융희) 봉서동에 새로 건립되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폐쇄되면서 국유화되었다. 1921년 후손들이 사당터를 다시 매입하여 복원하였으나, 1940년 일제의 토지 수용으로 봉지(鳳池, 현 가매못) 인근 봉바위 자리로 이전되었다.

  현재의 봉산사는 1975년 후손들의 뜻을 모으고, 조선 세종~성종 때 뛰어난 문장가이며 산수화가이시고 병조·이조판서(2), 좌찬성(1)을 지낸 강희맹(希孟)19세손인 재일동포 호산(湖山) 강계중(桂重, 순천 출신) 현종께서 거금을 쾌척하여 19831220일에 준공된 것이다.

  봉산사 동쪽, 비봉산 서쪽 기슭에는 고려 말 유학자 포은 정몽주가 머물렀던 비봉루가 남아 있다.

  또한 시조 강이식의 묘비는 만주 심양현 봉길선 원수림역 앞에 있으며, 매년 음력 310일에 이곳에서 제향이 거행된다.

다빈치! 지식지도 등

 

내용의 오해(誤解)와 한자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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