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강씨 칠곡 지천 입향 경위
진주강씨 박사공파 강맹경 강희안 강희맹의 종질(從姪) 강의정(姜儀貞)이 칠곡에 처음으로 입향하였다. 포산(苞山, 현풍) 곽씨와 결혼한 후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를 세거지로 정하여 1458년경에 입향하여 살았다.
박사공파(博士公派) · 통정공파(通亭公派) · 승지공파(承旨公派) · 청하공파(淸河公派)의 파조인 강의정(姜儀貞)은 청하현감을 지냈으며 자는 효칙(孝則)이고, 호는 우락당(憂樂堂)이다.
그 후 후손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칠곡 · 영천 · 군위 · 청송 · 청도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강의정의 아들 강지해(姜之海)는 이조참의를 지냈는데 문화 유씨와 결혼하여 5명의 아들「강효손(姜孝孫) · 강계손(姜繼孫) · 강충손(姜忠孫) · 강신손(姜信孫) · 강종손(姜終孫)」을 두었는데 모두 급제하여 가세(家世)를 떨쳤다.
5형제가 살고 있던 상지(上枝)마을 맞은편에 구슬정(九瑟亭)이라는 큰 정자를 짓고 살았다. 강의정의 아들인 강지해(姜之海)의 다섯 아들이 큰 잔치를 베풀고 자신들의 관인(官印)을 마당에 있는 다섯 개의 크고 작은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고 해서 다섯 개의 바위들을 오인석(五印石)이라고 부른다는 내용이「칠곡지(漆谷誌)」에 기록되어 있다.
현재 칠곡군 지천면 웃갓마을 일대에 살고 있는 진주강씨는 박사공파(휘 啓庸) 7세 통정공파(휘 淮伯)의 아우인 통계공파(휘 淮仲)의 자손들로 1790년 경 이주하였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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