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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 진주강씨 득성(得性) 전략(傳略) 

  강성(姜姓)의 개시원조이시며 중국 상고시대 삼황5(三皇五帝) 3황의 한 사람이다. 부친은 소전부락 군주(君主)이시고 모친은 제후(諸侯, 중국 봉건시대에 왕에게 영토를 받고 왕에게 의무를 지는 제도) 유교(유와)씨의 여식이시다. 이름은 임기(임사)라고 하며 여등(안등)이라고도 한다. 모친은 소전부락 군주의 정비(正妃)로서 화양(현 협서화산) 땅에 계실 때 상양산(常羊山) 신룡(神龍)의 영감(靈感)으로 수태하고 여산진 신농동 석실(石室)에서 서기 전 3218416일 신자(神子)를 출산하니 인면용안(人面龍顏, 용의 얼굴)에 인신우수(人身牛首, 몸은 소)를 가졌으니 신체가 괴위(魁偉, 몸이 크고 훌륭함)하여 이름을 괴외(魁隗)또는 궤()라 하셨다.

  중국에서는 이날을 신농선제만세(神農先帝萬歲)일로 전국민이 제사를 드리는 날이기도 하다. 성장처(成長處)가 협서강수(陜西姜水)라 해서 성()을 강()이라 하여, 우리 강성은 개시원조(開始元祖) 이래 5200여 년의 상금(尙今)에 이른 것이다.

  태어나시면서 성인(聖人)이요 자질이 특후(特厚)하셨다. 실제(悉諸)와 구령(九靈) 두 분을 사부(師父)로 모시고 근학고행(勤學苦行)하셨으며 일만 약초를 처음 맛보실 때 독초의 독으로 하루에도 무수히 사생을 거듭하셨으니 소위 백생 백사(白生白死)하셨다고 하며 천자(天子)로서 자기 생명보다 백성과 세상을 구한다는 희생적 정신으로 백초(白草)를 맛보았으며 시공(是空, 모든 현상) 전후(前後)를 통하여 이런 어진 일은 없을 것이며 중국의 창시적 과학실험가셨다. 제후(帝后)는 분수(奔水)씨의 여식으로 이름은 덕발(덕담)이며 11녀를 두었다.

  태호복희씨() 제업(帝業, 황제 업적)의 뒤를 이어 년치(年齒 20세에 천자(天子, 하늘의 아들)(를 계수하여 처음 국도(國都)를 진()에 세우셨다. 신농씨는 화덕(火德, 불의 덕)으로 왕()이 되어 천하를 통치함에 염제(炎帝)라 칭하고 화기관(火紀官)으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치고 다스리며 존칭하기를 신농(神農) 또는 농황(農皇)이라 칭하셨고, 이를 열산(烈山)에서 일으키셨다고 하여 열산씨() 연산씨() 대정씨()라 하고 존칭으로 인황(人皇)이라 하셨다. 신호(身號)는 염제(炎帝), 세호(世號)는 신농(神農)이라 하고 도읍(都邑)을 산동곡부(山東曲阜)로 옮기면서 120년을 제위하셨다.

  후로 7(七代) 후손들이 제위를 계수하면서 신농(神農)의 호()를 쓰면서 385년 간 천하를 다스리니 도합 500여 년을 내려오면서 신농의 천하라 하겠다.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 붕어시(崩御時, 임금이 서거한 시각)의 향년이 140세였고 국장으로 호남다릉현()의 신농릉에 모셨다.

  청조(淸朝)5대 세종(世宗)11년(옹정(雍正)11년, 황제 용정제의 연호) 즉 서기 1732(아(我) 영조9) 계축년에 청조에서 릉의 영역을 넗히고 능묘(陵廟, 종묘)를 지어 새로이 단장하였다.

 

 참고 : 상갈(狀碣)은 주로 묘비(墓碑)나 사적비(事蹟碑) 등 조상의 업적이나 행적을 기록한 비석

 

내용의 오해(誤解)와 한자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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