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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서발(新譜序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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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보는 곧 존조수족(尊組收族, 조상공경 친족 화목)의 대의를 이룩하고 족친간 돈목 융합함을 뜻할 뿐만 아니라, 선인들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여 자손들로 하여금 조상의 뿌리와 사실을 바로 알고 긍지를 갖게 함은 현존하는 우리들의 책무라 할 것이다.

  우리 진주강씨는 시조 원수공(元帥公) 이후 파조(波組) 박사공(派祖 博士公)을 일세(一世)로 하고 현금(現今)까지 1400여 성상(一千四百餘 星霜) 세유관면(世有冠冕, 집안 대대로 벼슬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음)하고 명공거경(名公鉅卿, 이름난 높은 벼슬)이 혁혁계무(赫赫繼武, 명성이 빛나고 앞사람의 자취를 이어받다)하여 동국(東國)의 대성(大姓)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사람들의 이목에 빛 이 나고 있으나 세계(世系)와 문헌(文獻)이 인멸(湮滅)되어 세계(世系)를 밝히지 못하니 크나큰 유한(遺恨)이 아닐 수 없다.

  오() 족조 증좌승지(贈左承旨) 석로공(碩老公)께서 이 사실을 한탄하면서 전국을 근수박방(勤搜博訪, 방방곡곡 찾아 다니다)하며 십수년 공고(功苦)로 족보를 편성하고 계제(季弟) 석구공(碩耈公)이 구재모공(鳩財募工, 돈을 모으고 장인을 구하다)에 힘써 형무제종(兄武弟踵, 형이 앞서고 아우는 뒤따르다)하니 단종11년 기축년 1685(肅宗十一年 己丑(一六八五) 우리 족보 남한보(南漢譜)의 창보경행(創譜景行, 족보 창간)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청주보(清州譜)를 위시하여 1766년 병술년(一七六六年 丙戌)에 달성보(達城譜) 간행으로 박사공 휘 계용(啟庸)을 일세조(一世祖)로 계세(系世)하며 정보(正譜)로 정립되었다.

  시대적 변천에 따라 대소보사(大小譜事)가 거듭 수보보완(修譜補完) 되었으며 상계조(上系祖, 선조) 위선사(爲先事, 받드는 일)며 갑산 선영 정화 및 갑산재(甲山齋) 중건 등 추진을 목적으로 1991년 신미 12(一九九一年 辛未 十二月)부터 삼년여 지간(之間) 전 종중 호응 협력하에 1994년 갑술년(一九九四年 甲戌年) 박사공파 대동보 삼십일(31) 권이 간행되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으며 수년 후 박사공파 대종회에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숙원사업인 일세조(一世祖) 이하 15(十五位)의 열선조타령지소(列先祖妥靈之所, 제사 때 여러 조상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장소), 봉양사(鳳陽祠)를 공목공시거지(恭穆公始居址), 유서(由緒) 깊은 사월(沙月)땅 오룡(五龍)골에 거종적 협찬으로 200211(二千二年十一月) 착공하여 200311(二千三年十一月) 준공하여 봉향하고 있으나 앞날의 영구보존 관리에 재정상 어려움이 필연지사(必然之事)라 당면한 대비로 대동보 간행을 종중첨모(宗中僉謀)로 결의하니 절축 경비하고 여재전용(餘財專用)으로 묘사관리가 차질없이 이루어지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며 금차 수보(修譜)에 있어서 누보자가 없지 않으나 대략 전종인이 수록됨으로써 선조들의 빛나는 업적을 현양(顯揚)하고 모름지기 우리 후손들로 하여금 몰락된 윤기와 인성회복을 위해 흐트러진 인심을 찾고 한마음으로 숭조·돈목하고 무궁한 번영에의 길잡이로 삼는데 큰 기여있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바이다.    끝으로 수보에 즈음하여 노심초사한 임직원과 헌신적인 봉사로서 공헌한 편수위원 제위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20095월 진주강씨 박사공파 대종회 會長 강현송(顯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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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공파 대종회에서는 오대(五代) 숙원사업의 하나인 남남사사우(南南沙祠宇, 제사를 올리는 사당)를 봉양사(鳳陽祠) 문중과 개인의 성금으로 2004(四年) 성공적으로 봉축하여 마무리를 했습니다. 오랜 기간 어렵게 이룩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아무런 관리대책 없이 다음 세대(世代)들에게 물려준다면 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산일지라도 다음 세대들에게는 분명코 애물단지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1994년 갑술(一九九四年甲戌) 대동보를 발간한 이후 조금 이른 감은 있으나 이번 대동보를 편수하게된 큰 목적은 봉양사(鳳陽祠) 사우(祠宇)와 갑산선영을 유지관리하고 박사공파 대종회에서 꼭 필요한 주변 토지매입에 있다. 현세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문제점을 해결해서 다음 세대들에게 넘겨야 할 사명감이기도 하다.

금번 편수하는 대동보 을축보(己丑譜)1994년 갑술보(一九九四年 甲戌譜)를 근간으로 편수를 했고 누보(漏譜)된 문중과 개인들 에게도 수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젊은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전자족보를 제작하여 어디에서든 컴퓨터에 접속만 한다면 종중의 자료나 나의 계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우리가 잘 보완하고 다듬어서 다음 세대들이 유지 관리토록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기축보(己丑譜)를 편수함에 있어 많은 자문에 응해주신 영희(泳熙) 기노원장(耆老院長)님과 이 방대한 대동보를 소수의 인원으로 단기간 기획에서부터 원고정리 편집교정 및 분질까지 수고를 해준 상임부회장 의수(義秀)부회장 기창(錡昌)홍수(弘秀)와 대동보출판을 전담했던 족보전문업체 창문사 김종수 사장님을 비롯하여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기축 20095월 진주강씨 博士公 22세손 창회(昌會) 근발(謹跋)

 

내용의 오해(誤解)와 한자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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