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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림공(翰林公, 휘 창서彰瑞) 유사(遺事)

    진주강씨 翰林公(한림공) () 彰瑞(창서)幼年時節(유년시절)부터 晉州鄕校(진주향교)에 나가서 修學(수학)專心專力(전심전력)하여 作文(작문)짓는데는 江南(강남) 學者(학자)로서는 그 ()에 올라갈 사람이 없을 程度(정도)出衆(출중)하였다.

    高麗(고려) 熙宗(희종) 八年(팔년, 1212) 봄에 省試科擧(성시과거)보는 場所(장소)出發(출발)할 무렵 司戶(사호)라는 官職(관직)에 있는 父親(부친)이 때마침 某種罪過(모종죄과)連坐(연좌)되어 獄中(옥중)繫留(계류)하게 되었다.

    이때 晉州牧使(진주목사)가 있는 官衙(관아)로 찾아가서 父親(부친)免放(면방)하여 줄 것을 懇請哀願(간청애원)하였으나 肯許(긍허)하여 주지 않고 牧使(목사)가 말하기를 네가 萬若(만약)에 이번 科試(과시)에서 壯元及第(장원급제)할 것 같으면 그때 너의 父親(부친)免放(면방)하여 줄 것이다. 그때까지는 너의 父親(부친)獄中(옥중)留置(유치)하여 둘것이니 너는 科試(과시)나 잘보고 내려오너라. 나도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면서 慰勞激勵(위로격려)하여 보냈다. 그랬더니 그는 科庭(과정)에 나가서 果然(과연) 壯元及第(장원급제)를 하고 錦衣(금의)還鄕(환향)하게 되었다.

    牧使(목사)는 이 消息(소식)을 듣고 그 父親(부친)免放(면방)할 뿐만 아니라 幕僚州吏(막료주리)들을 引率(인솔)하고 城外(성외)까지 나가서 迎接祝賀(영접축하)하고 그의 집으로 함께 가서 크게 잔치를 베풀고 그 父母(부모)에게 祝杯(축배)를 드리면서 慶祝人事(경축인사)를 드리니 晉州一境(진주일경)이 모두 榮譽(영예)로 생각하면서 稱讚(칭찬)하고 기뻐하였다.

    그는 그뒤 官路(관로)에 나가서 昇進(승진)을 거듭하여 直翰林院(직한림원)官職(관직)에까지 昇進(승진)되었다 한다.

 

참고 :  병술보(丙戌譜, 1766)에 이르기를 구보에 원수공(元帥公)부터 교감공(校勘公, 휘 도)까지를 별록으로 기록하고 문성공(文成公, 휘 희경希經)금천공(錦川君, 휘 복민福民)한림공(翰林公, 휘 창서彰瑞)를 정보(正譜)로 하여 박사공(博士公, 휘 계용啓庸) 위에 계대(繼代)하였으나, 문성공(휘 희경希經)의 관직(官職)으로 보아서는 충렬왕(1274 ~ 1308) 이후의 인물이며 박사공이 일본에 가신 것이 원종(元宗) 갑술년(1274)이니 연대가 잘못되었으나 고증할 수 없으며, 박사공 위에 계대(繼代)하는 것은 불감(不感, 가능하지 않음)하기에 구보(舊譜) 별록 예()를 따라 교감공(휘 도)하에 옮겨 기록하되 자자(子字)를 써서 대수를 나타내지 못하고 다만 이름() 아모 라고만 기록하며 박사공부터 정보(正譜)를 시작한다고 하였다.

 

내용의 오해(誤解)와 한자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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