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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보 별록 계서도(舊譜 別錄 系序圖

 시조 휘 이식(以式, 원수공元帥公, 고구려)

 휘 운기(雲紀, 검교대장군撿校大將軍)

휘 수손(秀孫, 우부위대장군右部衛大將軍)

 휘 복(, 정동대장군,  遶동 요동(원동)도호총병遼東都護總兵, 요동병마원수원수元帥)

 휘 극용(克庸, 태사태보太師太保, 원동(요동)도백道伯)

 휘 택인(擇仁, 제2밀직교도제학부사, 진안후晉安候, 보안후?)

 휘 진(, 태중대부판내의령, 진양후晉州候, 진주강씨 득관)

 휘 사진(思進, 판문하평장사, 원충공元忠公, 고려 태조 경상卿相)

 휘 기장(起章, 판문하동평장사, 병마도원수)

 휘 구만(九萬, 중대광영상서 문하도성사, 판이부병부사 겸 4경유수四京留守)

        공께서 진주 대봉산하(진주 봉산동)에 사셨는데 집 뒤에 대암(大巖)이 있었고, 그 바위 위에 소암(小巖)이 있어 모양이 봉새와 흡사하다. 강남도사가 지나가다가 보고 말하기를 '강씨가 번성하는 것이 이 바위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휘 사미(士美, 국자제주판례부사 國子祭酒判禮部事)

 휘 홍(, 상서공尙書公, 상서좌복야중서문하시중평장사(1), “진주 봉란대의 유래참고)

        공의 형제 11명이 다 경상(卿相, 재상)의 높은 관직에 있으니 합문지후(閤門祗候) 이지원(李之元)이 그 세력이 융성함을 시기하여 몰래 사람을 시켜 봉바위를 격파하니  그 속에 큰 표주박만한 백색의 돌 4개가 있으므로 다시 철퇴로 부수니 돌 속이 붉은 피로 가득차 있었다. 그후 몇 해 안 되어서 적신(賊臣) 척준경(拓俊京, 상서좌복야)의 모함으로 공의 형제가 모두 적지(謫地, 유배)에서 돌아가시고 화(禍)를 입은 가족이 20여 명이며 이로부터 강씨가 쇠퇴하였다고 한다.

 휘 호덕(好德, 부령副令한림학사翰林學士, 상서지화尙書之禍(척준경의 난)로 진도로 귀양)

 휘 진보(進寶, 한림원 시강문학侍講文學, 척준경의 난으로 상서공 휘 홍()과 부령공 휘 호덕(好德) 등이 매를 맞고 귀양가는 것을 보시고 분하여 벼슬을 하지 않으셨다.)

 휘 홍명(鴻冥, 동평의사상서사 同評議使尙書事)

 휘 철영(哲永, 수군삼도도통사水軍三道都統使)

 휘 도(, 시중공侍中公, 보문각교감판내사령寶文閣校勘判內史令)

       嶺南譜以公為侍中(영남보이공위시중) 公之考以系代數(공지고이계대수)

       영남보에서는 공을 시중(侍中) 벼슬을 지낸 분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공의 부친(, 돌아가신 아버지)을 기준으로 하여 가계의 대수(代數)를 잇거나 계산한다.

 

 시조 휘 이식(以式, 원수공元帥公, 고구려)

    ▷ 원대(遠代) :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 몇 대()인지 알 수 없는 옛 세대 즉 원수공(휘 이식)과 손() 휘 희경(문성공) 사이의 여러 대()가 정확하지 않고 중간 계보가 끊어졌다는 의미

 휘 희경(希經, 문성공文成公, 문하시중門下侍中, 동지밀직제학同知密直提學, 평의사評議使 내사령內史令)

 휘 복민(福民, 판금천군사判錦川郡事, 동정결추위同正潔樞尉)

 휘 창서(彰瑞, 한림학사翰林學士, 여사창질창麗史彰作昌)

    世系中絕(세계중절) 自始祖至侍中公(자시조지시중공) 未知幾代(미지기대)

咸悅姜天祿譜(함열강천록보) 闕翰林一代(궐한림일대)

   가문의 계보(세계)가 중간에 끊어져 시조로부터 시중공(휘 도度)에 이르기까지 몇 대()가 지났는지 알지 못한다. 전북 익산시 함열지역의 강천록씨 가문의 족보 또는 그 계보를 기록한 문헌에 의하면 한림벼슬(휘 창서彰瑞)을 지낸 선조로부터 그 아래로 한 세대의 기록이 빠져 있거나 비어 있다.

 

 屢經變亂(누경변란) 譜牒無全(보첩무전) 元帥公(원수공) 以下(이하) 侍中公(시중공) 以上(이상) 世系中絕(세계중절) 不系代數矣(불계대수의)

    잦은 변란을 겪으면서 보첩(족보)이 온전하지 못하여 원수공 이하에서 시중공 이상까지의 세계가 끊어져 대수를 잇지 못하였다.

   

   訪于京外(방우경외) 子孫得之(자손득지) 嶺南宗人家(영남종인가)

   이에 서울과 그 밖의 지방을 두루 찾아 자손들이 영남 종인 집에서 자료를 얻었다.

   

   自檢校公至校勘公(자검교공지교감공) 凡十六代也(범십육대야) 然元帥公(연원수공) 以下(이하) 尚不繼數三代(상불계수삼대) 而且非印本(이차비인본) 或處代數之顛倒(혹처대수지전도) 名字之(명자지)

   검교공( 운기雲紀)에서 교감공( )까지는 모두 16대이다그러나 원수공 이하에서는 여전히 수삼대(數三代)가 확실히 이어지지 않았고, 또한 인쇄본이 아니라 필사본이라, 혹시 대수가 뒤바뀌거나 이름에 착오가 있을까 염려되며, 관직제도 가운데도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訛誤(와오) 而官制中(이관제중) 亦有可疑(역유가의) 故不敢(고불감) 仍系代序(잉계대서) 載于卷首(재우권수) 以俟後之博識者(이사후지박식자) 廣採明文(광채명문) 詳細考正也(상세고정야) (을축보乙丑譜)

    그러므로 감히 그대로 대수의 차례를 이어 권두(책의 맨 앞)에 싣지 못하고, 후일에 올 박식한 사람이 널리 문헌을 찾아 자세히 고증하여 바로잡기를 기다린다.(을축보乙丑譜)

 

병술보(丙戌譜, 1766)에 이르기를 구보에 원수공(元帥公)부터 교감공(校勘公, 휘 도)까지를 별록으로 기록하고 문성공(文成公, 휘 희경希經)금천공(錦川君, 휘 복민福民)한림공(翰林公, 휘 창서彰瑞)를 정보(正譜)로 하여 박사공(博士公, 휘 계용啓庸) 위에 계대(繼代)하였으나, 문성공(휘 희경希經)의 관직(官職)으로 보아서는 충렬왕(1274 ~ 1308) 이후의 인물이며 박사공이 일본에 가신 것이 원종(元宗) 갑술년(1274)이니 연대가 잘못되었으나 고증할 수 없으며, 박사공 위에 계대(繼代)하는 것은 불감(不感, 가능하지 않음)하기에 구보(舊譜) 별록 예()를 따라 교감공(휘 도)하에 옮겨 기록하되 자자(子字)를 써서 대수를 나타내지 못하고 다만 이름() 아모 라고만 기록하며 박사공부터 정보(正譜)를 시작한다고 하였다.

참고1 : 동지밀직제학(同知密直提學, 휘 희경(希經)은 고려 후기(원 간섭기 전후, 원나라가 고려 내정에 깊이 관여한 시기로 대략 1259 ~ 1356)의 관직 명칭이다. 충렬왕 때(1275) 기존의 중추원이 '밀직사'로 개편되면서 생긴 관직이다. '제학'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학문적 소양을 갖춘 밀직사의 관원을 의미한다.

 

참고2 : 평의사(評議使, 휘 희경(希經)는 고려 후기(공양왕 시기)의 관직 명칭이다. 1389년 최고 정무 기구인 도평의사사(도당)의 구성원을 부르던 명칭으로 고려 말의 정치 체제를 상징한다.

 

참고3 : 족보(族譜)에서 별록(別錄)은 본문의 계보(세계, 世系)에 포함되지 않거나, 특별한 사유로 인해 별도로 기록된 내용을 말하며, 흔히 족보의 말미에 부록 형태나 별도의 목차로 수록되어, 가문의 정통 계보인 세계(世系)와 구분된다. 족보 편찬 당시 계보가 확실하지 않은 선세(先世, 선조) 등을 다루거나, 특별히 기록해야 할 인물의 행적을 별도로 정리할 때 별록으로 기록한다.

 

내용의 오해(誤解)와 한자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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