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 형제 11명이 다 경상(卿相, 재상)의 높은 관직에 있으니 합문지후(閤門祗候) 이지원(李之元)이 그 세력이 융성함을 시기하여 몰래 사람을 시켜 봉바위를 격파하니 그 속에 큰 표주박만한 백색의 돌 4개가 있으므로 다시 철퇴로 부수니 돌 속이 붉은 피로 가득차 있었다. 그후 몇 해 안 되어서 적신(賊臣) 척준경(拓俊京, 상서좌복야)의 모함으로 공의 형제가 모두 적지(謫地, 유배)에서 돌아가시고 화(禍)를 입은 가족이 20여 명이며 이로부터 강씨가 쇠퇴하였다고 한다.
가문의 계보(세계)가 중간에 끊어져 시조로부터 시중공(휘 도度)에 이르기까지 몇 대(代)가 지났는지 알지 못한다. 전북 익산시 함열지역의 강천록씨 가문의 족보 또는 그 계보를 기록한 문헌에 의하면 한림벼슬(휘 창서彰瑞)을 지낸 선조로부터 그 아래로 한 세대의 기록이 빠져 있거나 비어 있다.
그러므로 감히 그대로 대수의 차례를 이어 권두(책의 맨 앞)에 싣지 못하고, 후일에 올 박식한 사람이 널리 문헌을 찾아 자세히 고증하여 바로잡기를 기다린다.(을축보乙丑譜)
◇ 병술보(丙戌譜, 1766년)에 이르기를 구보에 원수공(元帥公)부터 교감공(校勘公, 휘 도度)까지를 별록으로 기록하고 문성공(文成公, 휘 희경希經)、금천공(錦川君, 휘 복민福民)、한림공(翰林公, 휘 창서彰瑞)를 정보(正譜)로 하여 박사공(博士公, 휘 계용啓庸) 위에 계대(繼代)하였으나, 문성공(휘 희경希經)의 관직(官職)으로 보아서는 충렬왕(1274 ~ 1308년) 이후의 인물이며 박사공이 일본에 가신 것이 원종(元宗) 갑술년(1274년)이니 연대가 잘못되었으나 고증할 수 없으며, 박사공 위에 계대(繼代)하는 것은 불감(不感, 가능하지 않음)하기에 구보(舊譜) 별록 예(例)를 따라 교감공(휘 도度)하에 옮겨 기록하되 자자(子字)를 써서 대수를 나타내지 못하고 다만 이름(諱) 아모 라고만 기록하며 박사공부터 정보(正譜)를 시작한다고 하였다.
참고1 : 동지밀직제학(同知密直提學, 휘 희경(希經)은 고려 후기(원 간섭기 전후, 원나라가 고려 내정에 깊이 관여한 시기로 대략 1259 ~ 1356년)의 관직 명칭이다. 충렬왕 때(1275년) 기존의 중추원이 '밀직사'로 개편되면서 생긴 관직이다. '제학'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학문적 소양을 갖춘 밀직사의 관원을 의미한다.
참고2 : 평의사(評議使, 휘 희경(希經)는 고려 후기(공양왕 시기)의 관직 명칭이다. 1389년 최고 정무 기구인 도평의사사(도당)의 구성원을 부르던 명칭으로고려 말의 정치 체제를 상징한다.
참고3 : 족보(族譜)에서 별록(別錄)은 본문의 계보(세계, 世系)에 포함되지 않거나, 특별한 사유로 인해 별도로 기록된 내용을 말하며, 흔히 족보의 말미에 부록 형태나 별도의 목차로 수록되어, 가문의 정통 계보인 세계(世系)와 구분된다. 족보 편찬 당시 계보가 확실하지 않은 선세(先世, 선조) 등을 다루거나, 특별히 기록해야 할 인물의 행적을 별도로 정리할 때 별록으로 기록한다.